수원 한복판 작은 식탁에서, 아시아와 서양이 살짝 부딪히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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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한가운데, 이상하게 자꾸 생각나는 집 하나

수원에 살다 보면, 사실 선택지가 너무 많습니다.
골목마다 간판이 반짝이고, 새로운 집이 생겼다 없어졌다를 반복하죠.
그래서인지 웬만한 가게는 두 번 가기가 어렵습니다.
‘좋았는데, 이상하게 다시 안 가게 되는 곳’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어느 날, 유난히 피곤했던 주말 저녁이었어요.
친구가 “그냥 뭐, 수원 한복판에 새로 생긴 데 있다던데 가볼래?” 하면서
대충 던지듯이 추천해 준 공간이 하나 있었죠.
처음엔 이름도 제대로 못 외웠습니다.
그저 ‘아시아랑 서양 섞어서 나오는 집’ 정도로만 기억해두고
별 기대 없이 걸어갔어요.

문을 열었을 때의 느낌은…
‘와, 진짜 외국 온 건 아니고?’
그런 건 아니고, 딱 그 중간쯤.
낯설지는 않은데, 집 밥과도 좀 다른 분위기.
그렇다고 과하게 꾸며놓은 레스토랑 느낌도 아니고요.
편안한데 어딘가 낯선 공기, 그 정도였습니다.

아시아와 서양 사이, 애매해서 더 매력적인 그 맛

메뉴판을 처음 펼쳤을 때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은
“아… 이건 뭘 먹어야 하지?”
익숙한 단어와 낯선 단어가 같이 적혀 있으니까
머리가 잠깐 멈추더라고요.

면인데 소스는 동남아풍처럼 보이고,
위에 올라가는 토핑은 또 유럽 느낌이고,
플레이팅은 깔끔한데 향은 좀 과감하고.
설명만 읽어도 입속에서 여러 맛이 섞이는 기분이었어요.

그런 퓨전 음식이 요즘 전 세계적으로 또 한 번 주목받고 있다고 하더군요.
관련 기사도 찾아보면 금방 나옵니다.
퓨전 음식에 관한 트렌드 글을 읽다 보면
사람들이 왜 이런 ‘경계가 흐릿한 맛’을 좋아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이곳의 음식도 그렇습니다.
한쪽으로 확 치우치지 않고,
그렇다고 애매하게 타협한 맛도 아닙니다.
동양의 익숙한 온도와
서양의 과감한 조합이
입안에서 살짝 부딪히다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섞여버리는 느낌이에요.

첫 한 입이 주는, 예상 밖의 조용한 충격

그날 제가 첫 주문으로 골랐던 건
‘아시아풍 소스를 올린 서양식 메인’ 같은 메뉴였습니다.
이름은 길고 화려했는데,
정작 한 입 먹고 나서 느낀 건 아주 단순했어요.

“아, 이건 누가 데려와도 괜찮겠다.”

고급 레스토랑처럼 무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벼운 분식집 느낌도 아니고요.
가족이 와도 좋고,
연인이 와도 좋고,
혼자 와서 천천히 음식을 즐겨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그런 곳.

그래서일까요.
이 집은 ‘메뉴 하나’로 기억에 남은 게 아니라
‘공기 전체’를 통째로 떠올리게 됩니다.
수원의 중심부, 적당히 분주한 거리를 지나
문 하나 열고 들어오면 만나는
그 조용한 온도.

2020년, 어수선한 세상 속에서 조용히 문을 열다

가게의 역사를 듣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더 갔습니다.
2020년, 세상이 온통 불안하고
사람들 얼굴에서도 여유가 사라지던 시기였잖아요.

바로 그 해에 이 공간이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누군가에겐 무모해 보였을 선택.
누군가에겐 용기였을 결정.

지역 주민들이 그때부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고,
인근 회사 사람들, 근처에 사는 가족 단위 손님들,
이런저런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한두 명씩 찾아와서 자리를 채웠다고 해요.

2021년에는 손님들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메뉴를 대대적으로 손봤다고 합니다.
“이건 좋지만 조금 심심하다.”
“조금 더 매콤했으면 좋겠다.”
“한국 사람 입맛에는 이게 낫지 않을까요?”
이런 말들을 그냥 흘려듣지 않고
실제로 레시피에 반영했다고 하더군요.

2022년에는 첫 연말 파티를 열었다고 합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사이,
모두가 조금 들떠 있고 동시에 지쳐 있던 그 때.
작은 파티 테이블들이 채워지고
근처에 사는 단골들이 모여
서로의 한 해를 나눴다고 해요.

2023년에는 아예 서비스 교육을 강화하면서
이곳만의 ‘태도’를 정리했다고 합니다.
너무 과하지도,
너무 시큰둥하지도 않은 선.
손님이 편하게 느끼면서도
필요한 순간엔 정확하게 다가가 주는 방식.

숫자로 정리하면 간단하지만, 실제론 꽤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냥 연혁으로 적으면
2020: 오픈
2021: 메뉴 개선
2022: 연말 파티
2023: 서비스 교육
이렇게 네 줄이면 끝나는 이야기죠.

하지만 그 사이에는
수없이 많은 시도와 실패,
다시 시도,
손님의 눈빛,
주방의 땀,
홀에서 쌓인 작은 기억들이
촘촘하게 껴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지금 이 공간에 앉아 있으면
괜히 그런 게 느껴집니다.
“이 집은 쉬운 길을 택하진 않았구나.”

한 접시에 담긴 이야기, 그리고 그걸 읽어내는 손님들

여기서 나오는 음식들은
전형적인 정답이 있는 맛은 아닙니다.
한식처럼 친숙하지만,
한식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완전히 서양식도 아니고요.

요즘 외식 트렌드를 보면
아시안 퓨전, 세계 각국의 양념과 식재료를 섞는 흐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죠.
세계 요리 트렌드 정리한 글을 보면
아시아·유럽을 넘나드는 접시들이
이제는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됐다고 합니다.

이 집의 메뉴도 그런 흐름 속에 있으면서,
동시에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살짝 바뀐 소스
  • 손님들이 좋아해서 고정 메뉴가 된 한 접시
  • 시즌마다 바뀌는 재료를 실험 삼아 올려보는 토핑
  • 어느 날 단골이 남긴 ‘이 조합 괜찮다’ 한마디로 살아남은 레시피

이런 과정이 쌓여서,
지금의 ‘맛’이 되어버렸습니다.

수원이라는 도시와 어울리는 맛이라는 것

수원은 참 애매하면서도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전통과 현대가 어정쩡하게 섞여 있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 걸어 다니다 보면
그 어정쩡함이 묘하게 자연스럽죠.

오래된 시장 옆에
새로운 카페가 생기고,
전통 한식집에서 조금만 걸으면
모던한 퓨전 레스토랑이 보입니다.

이런 동네 특성 때문인지,
수원은 요즘 ‘음식 도시’로 자주 언급되기도 합니다.
경기도 맛집을 정리해 놓은 글을 보면
수원이 전통과 트렌드를 동시에 품은 도시라고 하더군요.

이 공간도 딱 그런 느낌입니다.
멀리서 보기엔 ‘어느 번화가에나 있을 법한 레스토랑’처럼 보이는데
안에 들어와 앉아 있으면
수원이라는 도시의 공기와 바로 연결되는 느낌.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한 테이블 위에 같이 놓인 느낌

한 쪽 테이블에서는
부모님과 자녀가 함께 식사를 하고,
다른 테이블에서는
데이트 초기인 듯한 커플이 조심스레 메뉴를 고르고,
구석 자리에서는
혼자 온 손님이 조용히 와인 한 잔을 곁들입니다.

같은 공간 안에서
서로 다른 시간이 흘러가는 것 같아요.
그걸 주방과 홀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내고 있고요.

주방에서 시작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한 숟갈

이곳의 주방은 꽤 분주합니다.
주문이 많이 들어오는 시간대에는
불 앞에서 쉼 없이 손이 움직이고,
소스 냄새가 짧게 흘렀다가 사라지고,
오븐 문 여닫는 소리가 리듬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음식이 손님 앞에 놓이는 순간,
그 분주함은 감쪽같이 숨습니다.
접시에 담긴 건 항상 정돈된 결과물뿐이니까요.

손님 입장에서는
“아, 예쁘네”라고 말끝을 흐리다가
한 번 먹고 나면
“이거 뭐지?” 하는 반응이 따라옵니다.

한 입으로 설명되지 않는 맛.
씹을수록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향.
뭔가 익숙한데 익숙하지 않은 소스.
젓가락과 포크 사이를 왔다 갔다 하게 만드는 구성.

그래서 이곳에서 밥을 먹고 나면
집에 가는 길에 괜히 검색을 해보게 됩니다.
“요즘 퓨전 요리 트렌드가 어떤지”,
“아시아와 서양의 조합이 왜 이렇게 많아졌는지”.
이런 궁금증을 낳는 식당,
사실 흔하지 않잖아요.

한 번 왔다가, 나중에 누군가를 데려오게 되는 곳

좋은 가게의 기준이 뭘까 생각해 본 적 있습니다.
맛이 압도적으로 좋다?
인테리어가 예쁘다?
사진이 잘 나온다?

다 맞는 말일 수 있지만,
저는 요즘 이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내가 다시 올 만한 곳,
그리고 누군가를 데려오고 싶은 곳.”

이 공간이 딱 그렇습니다.
처음 방문 이후,
누군가가 “수원에서 어디 갈까?” 물어보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되어버렸습니다.

가족 모임 자리로도 괜찮고,
조용한 기념일 저녁에도 괜찮고,
그냥 나 스스로를 위해
작은 선물 같은 식사를 하고 싶을 때도 적당합니다.

“다음에는 누구랑 오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식당

한 번은 친구와 둘이 와서
정신없이 수다 떨다 나갔고,
또 한 번은 가족과 같이 와서
사진을 잔뜩 찍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냥 혼자 와서 바 좌석에 앉았어요.
바깥 거리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식사를 했죠.

그날 느꼈습니다.
“아, 여긴 정말 어떤 형태로 와도 괜찮은 곳이구나.”

서비스는 과하지 않게, 그러나 분명하게 남는다

이곳의 직원들은
지나치게 친절한 척 하지 않습니다.
과장된 멘트나,
부담스러운 리액션도 없고요.

대신 필요한 순간에 정확히 다가옵니다.
물이 비었을 때,
접시를 비운 걸 눈치챘을 때,
손님이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을 때.

2023년에 서비스 교육을 본격적으로 진행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 그래서 그랬구나” 싶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건 작은 차이인데
그게 전체 경험을 꽤 많이 바꾸거든요.

손님이 조용히 있고 싶어 하는지,
이것저것 묻고 싶어 하는지,
분위기를 즐기고 싶은지,
편하게 빨리 먹고 나가고 싶은지.
이런 걸 잘 읽어내는 태도.

그런 태도가 있는 곳은
자연스레 ‘단골’이 생깁니다.
이곳도 이미 그런 단계에 들어선 것 같아요.

이 공간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들

이곳에서 밥을 먹고 나면
단순히 배만 부른 게 아니라
마음에 작은 여유가 생깁니다.

수원이라는 도시 한가운데에서
잠깐 멈춰 서서
아시아와 서양이 뒤섞인 한 접시를 마주하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까지 함께 씹어보는 시간.

세상이 점점 빨라지고,
먹는 것마저 ‘빨리, 싸게, 간단히’가 되어가지만
가끔은 이런 곳이 필요합니다.
속도를 조금 늦추고,
입안의 맛과 내 하루를 같이 떠올려 볼 수 있는 자리.

이곳은 그런 자리를 만들어주는 공간입니다.
대단한 철학을 내세우지 않아도,
거창한 슬로건을 붙이지 않아도,
접시 위에서 충분히 말하고 있으니까요.

언젠가, 당신의 기억 속에도 한 장면으로 남기를

언젠가 시간이 훌쩍 흘렀을 때
수원을 떠올리면
화성도, 갈비도, 통닭거리도 떠오르겠지만
그 사이 어딘가에
이 식당의 한 장면이 끼어 있으면 좋겠습니다.

잔잔한 조명 아래
테이블 위에 놓였던 한 접시,
그 옆에 놓인 잔,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사람의 얼굴,
혹은 혼자 앉아 있던 나 자신의 표정.

그런 장면 하나만 남아도
이 공간이 해낸 역할은
꽤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주방에서는 불이 켜지고,
홀에서는 음악이 흐르고,
문은 조용히 열렸다 닫히겠죠.

그리고 언젠가,
당신도 그 문을 한 번쯤 밀고 들어와
수원의 한 가운데서
조금 특별한 저녁을 만나게 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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